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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중국과 대만의 불편한 관계(feat. 미국의 대만 지원이유)

by 세하빠더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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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가운데 두고 중국과 미국이 서로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대만이 독립을 외치면 금방이라도 침공할 듯하고요,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참전의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미국, 중국, 대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번 편이 대만의 역사 편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대만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2022.10.30 - [뉴스 읽어주기] - 중국에 시달리는 대만의 역사
2022.10.31 - [뉴스 읽어주기] - 국공내전으로 보는 당시 중국 상황과 대만의 수립과정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의 상황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물러난 중국 땅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돕니다.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을 몰아내기 위해 국공합작으로 잠시 불편한 동거를 감수했던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서로 눈치게임을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 사상이 강하고 공산당을 극히 싫어했던 장제스의 국민당이 먼저 치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여당 격이었던 국민당은 내부 부정부패가 아주 심했습니다. 얼마나 심했냐면, 미국이 국민당에게 전쟁 물자를 지원했는데, 구호품, 무기와 같은 물품들을 빼돌리고, 심지어 적이었던 공산당에게 팔아먹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심 또한 국민당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당은 과거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 힘을 합쳐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나라의 내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공산당을 공격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중국 인민들의 민심을 모두 잃은 상태였습니다. 반면 공산당은 점령지에서 부자들의 땅을 빼앗아서 가난한 인민들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민심마저 공산당으로 기울고 맙니다. 결국 국민당은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1949년 공산당이 승리하고 사회주의 나라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이 되고, 국민당은 대만섬으로 쫓겨나 자본주의 국가인 중화민국을 수립합니다. 이 중화민국이 지금의 타이완(대만)입니다.

그렇게 장제스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1949년 시점, 전 세계적으로는 한동안 냉전의 시대였습니다. 바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사상과 미국이 이끄는 자본주의 사상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말하죠. 또한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아주 거대한 중국 땅을 갖고 있는 상황에, 상대적으로 아주 조그마한 섬으로 쫓겨난 대만을 바로 통일을 하려고 시도하려고 군사를 집결까지 시켰습니다.

그때 위기의 대만에게 둘도 없는 대운이 있었습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이나,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에게 타이완 통일을 잠시 멈추고, 한국전쟁을 먼저 도와달라고 회유를 합니다. 결국 중국은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다 써버립니다. 거기에 미국이 해군 제7함대를 끌고 와서 대만에 배치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을 무력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게 되는 겁니다.

그 이후로는 냉전의 상황에서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였던 대만에 대하여 전폭적인 지지 해주게 됩니다. 그래서 대만은 국가로도 자리 잡고, 중국보다 더 빠르게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찾아갑니다. 예를 들어 1952년 일본과 일화 평화조약이라는 국교도 정상화를 시작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국가의 일원으로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또한 중국을 대표해서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차지합니다. 그러나 냉전의 상황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고,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게 되면서 잘 나가던 대만에게 점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 : 핑퐁외교

냉전 상황이 점점 완화되는 분위기가 되면서 국제정세가 바뀌게 됩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끝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장기화되다 보니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 국내 여론도 굉장히 안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이제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마침내 1969년 닉슨 독트린 대통령이 미국은 아시아에서 군사개입을 자제하겠다며, 자국의 방어는 자국이 알아서 하라는 발표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스탈린이 죽은 다음에 중국과 소련 간에 굉장히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냉전 상황도 점점 완화되는 분위기에다가 소련과의 갈등이 많다 보니, 중국은 미국 측에 손을 뻗치게 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하고 소련이 갈라지기 시작한 틈새를 봤고,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미국과 중국,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맞으면서 미국과 중국은 손을 잡게 됩니다. 사실 두 번째 이유는 표면적인 것 같고, 세 번째 이유로는 미국은 중국을 아주 거대한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봤던 것 같습니다. 인구도 엄청 많고, 성장 잠재력도 커 보이는 상황에서, 마침 중국이 세계와 교류를 하고 싶다고 나오니 옳다구나 하고 손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게 된 것을 데탕트(détente : 긴장완화)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물꼬를 트게 된 것은 바로 탁구였습니다. 1971 년에 일본 나고야에서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가 있었고, 그래서 중국 측에서 친선 게임해보지 않겠냐라고 미국 측에 제안합니다. 그래서 그때 중국에 미국 선수단이 가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만나서, 미중간 회담 약속을 잡고, 그리고 1972년 2월 21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날은 냉전 구도에서 벗어나 긴장완화를 조성한 역사적 사건이며, 그 후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됩니다. 이것을 핑퐁외교라고 부르는데요 여담이지만, 이 탁구 친선게임을 두고 작은 탁구공이 큰 지구공을 흔들었다는 얘기도 합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톰 행크스 가 맨 처음에 전쟁에 참여했다가 탁구 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하는 대사가 "우린 백 년인가만에 처음 중국에 간 미국인이었데요" 이러는 대사도 나옵니다.

결국 중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 아주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타이완에게는 암울한 시대가 오게 됩니다. 1971년 10월 25일, 중국이 유엔에 가입을 하고 심지어는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에 까지 오릅니다. 중국은 국제 사회에 등장함과 동시에 중국과 교류를 하려면 타이완과 교류를 끊어라고 압박을 하죠. 그런 분위기에서 유엔은 대만에게 상임이사국 자리는 물러나는 게 어때? 회원국으로는 남겨줄게 라며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대만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데요, 바로 유엔 탈퇴를 선언하고 나와버리게 되는 거죠. 그렇게 시장의 크기로 보나 힘의 크기로 보나, 중국이 훨씬 우세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저울질할 새도 없이 대만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차례로 대만과의 교류를 끊습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국교를 맺을 때 중국에서 내거는 조건은 대만과 단교를 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68 곳이었던 대만의 수교국은 현재는 14 곳에 불과합니다.

1971년 10월 25일, 중국은 투표를 통해 유엔에 가입하고 대만을 밀어냅니다.


한때 중국과 대만에 화해의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1978년 덩샤오핑(등소평)이 등장하는 것이죠.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먹이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뜻으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잘 살게만 하면 된다라는 것), 경제특구 지정 등을 하면서 중국이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1984년에는 대만에 대한 통일방안으로 일국양제를 발표합니다. 일국양제란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말하는데요, 대만에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줄게 라는 발표를 합니다. 이때 대만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데요, 1949년에 선포한 계엄령이 1987년에 해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처럼 대만에서도 중국으로 방문도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로 중국과 경제, 민간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관계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의 분리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은 중국사람이 아닌 대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최근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75%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홍콩에서 최근 민주화 운동인 우산 혁명이 있었습니다. 우산 혁명이 발생했을 때 중국에서 아주 강력하게 진압을 했었습니다. 대만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일국양제를 외치며, 민주주의도 보장해준다고 말했지만 막상 홍콩사태를 보니, 중국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더더욱 경계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대만 지원 이유, 중국의 대만 침공 의지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굉장히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1979년에 미국이랑 중국이 수교 맺으면서 타이 완하고는 단교했지만, 최근에 미국은 대만에 대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동맹국으로서 수호할 의지가 있다고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지정학, 군사적인 이유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 일본, 대만 여기까지를 묶어서 이 동아시아 세계에서 사회주의 공산화를 막는 기지로 연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고요, 바로 이전 글에서도 설명한 적 있는 first island chain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하면 삼성전자인데요, 사실 이 삼성전자보다 세계적으로 더 높은 점유율을 가지며 1위인 회사가 TSMC이고, 이 회사가 바로 대만의 회사입니다. 요즘 반도체가 워낙 중요하다 보니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 공급난으로 차량 생산이 안되고 있고, 반도체 업체들의 성장도 어마어마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향후 자율주행, AI와 같은 미래산업에도 반도체 수요는 엄청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반도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만과도 긴밀하게 협업을 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어떻게 될까요? 먼저 중국은 2005년에 반공 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반국가 분열법을 만들어 대만 침공 명분을 세워 놓았습니다. 거기에 시진핑이 세 번째 연임에 성공을 했고요. 이번 당대회를 통해서 이인자 리커창 및 자신과 다른 세력을 모두 떨어뜨리고, 자신의 측근만 중앙위원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대만에 대해서 무력을 사용하여 통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또한 대만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엄청 올라가고, 게다가 홍콩 우산 혁명을 지켜봤던 대만의 젊은 세대가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을 믿지 못하며 독립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에 대해서 적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동맹국이 침공당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선포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만 지원 선언 때문에, 중국이 그런 부담을 안고서 대만을 무력 침공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점점 동북아 정세가 혼돈에 빠지고 있는데요,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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