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시진핑이 3 연임에 성공하면서 대만에 대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해서 바꾸게 되는데요, 도대체 왜 중국과 대만은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시리즈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대만의 지난 역사와 현재 대만의 정권이 어떻게 수립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번 편에는 대만의 역사에 대해서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편은 지금의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있게 한 국공내전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책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포스팅 참조 부탁드립니다.
2022.10.23 - [뉴스 읽어주기] - 시진핑 3 연임 확정에 따른 중국의 향후 정책 방향과 대만 침공 가능성
대만의 간략한 설명
- 대만 국호 : 타이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국가의 공식 국호는 republic of china 중화민국이지만, 올림픽대회 또는 국제기구에 참가할 때는 중화타이베이(chinese taipei)라고도 합니다
- 대만 국기 : 청천백일만지홍기라고 합니다. 왼쪽 위에 위치한 태양의 심벌은 푸른 하늘에 뜬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12개의 빛줄기로,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년 12개월을 형상한 것이며 파랑(청명, 순수, 자유), 하양(정직, 이타심, 평등), 빨강(희생, 유혈, 형제애)의 3가지 색깔은 쑨원이 주창한 삼민주의를 상징함.
- 대만 위치 : 중국 본토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의 섬나라, 수도는 타이베이, 대만 면적은 3만 5천 제곱킬로미터, 경상남북도의 면적을 합친 3만 2천 제곱킬로미터보다 조금 넓은 수치임.
- 대만 인구 : 약 2,389만 명으로 인구구성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족이 98%, 원래부터 살고 있던 다양한 원주민이 2%
- 대만 언어 : 언어 베이징 방언을 기초로 한 표준 중국어 사용, 2019년부터 제2공용어를 영어로 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영어가 공용어임.
- 대만 종교 : 불교, 도교, 유교의 3대 종교와(93%) 기독교(5%), 기타(2%)


대만의 역사
대만섬에는 오래전부터 말레이시아 계열의 원주민이 살았습니다. 명나라 시대까지 한족은 대만을 공식적인 관할로 두지 않았으며, 그래서 대만에 대한 그 이전의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대만섬에는 말레이시아 계열의 원주민과 한족,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각기 마을을 형성하고 수렵 및 채집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1600년대 즈음에는 유럽에서 설탕 재배에 환장을 하던 시기였는데, 네덜란드는 대만섬에서 사탕수수가 너무나 재배가 잘 된다는 것을 알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기 위해 원주민이 살던 대만에서 식민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네덜란드가 대만에서 재배한 사탕수수로 중국과 일본의 중계무역을 통해서 재미를 보자, 대만이 중계무역의 거점으로서 가치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대만 북부지역에 있는 지금의 수도인 타이베이 지역에 스페인이 식민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현재 대만의 수도이자 북부에 있는 타이베이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남부에 있는 타이난과 까오슝은 네덜란드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식민 작업이 눈에 거슬렸나 봅니다. 결국 북부 쪽에 자리 잡고 있던 스페인의 동인도회사를 밀어버리고 그 지역을 네덜란드가 차지합니다.

이 시기 즈음에 1644년 홍타이지라는 만주족이 명나라를 침입하면서 중국 대륙은 청나라로 통일이 됩니다. 이때 명나라를 끝까지 지키던 명나라의 장수 정성공이 남아있던 병력과 함께 청나라의 군대를 피해서 바다 건너 대만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때 대만에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스페인을 쫓아내고 대만섬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있었습니다. 정성공은 대만으로 넘어온 이후 아주 강력하게 저항했고 그 결과, 네덜란드를 세력이 아주 약해지면서 대만섬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대만섬에서 잘 정착하고 있던 정성공이었지만, 1683년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하여 대만을 점령하게 되고, 1684년에는 청나라의 본격적인 지배를 청나라의 영토가 되어 그 뒤로 약 200년 동안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약 200년 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대만은 5개월 동안 각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력항쟁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덧붙이자면 한국에서 김영삼 대통령 때 폭파시켰던 조선총독부처럼, 대만에도 대만총독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치욕으로 여기며 총독부 건물을 없애고 다시 원복 시켰는데, 대만은 현재 총독부 건물을 현재 총통의 집무실로 쓰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 보려고 하는데, 대만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만의 나이가 든 사람이 도 그렇고 특히 젊은 층에서 일본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단일민족으로 계속 왕조를 오랫동안 유지를 해온 반면 대만은 160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닌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해왔고, 계속적으로 이방인들이 대만섬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우리나라가 외세의 통치를 받는 부분에 대해서 아주 저항이 심한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고, 대만의 경우는 일본 식민통치 초기에 무력항쟁을 했던 부분이 있으나, 일부 대만섬을 통치하던 자들의 무력항쟁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국가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통치하던 잘살게만 해주면 문제없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마침내 일본이 미국에 원폭 2발을 맞고 완전 항복을 선언 후 1945년 10월 25일, 대만은 중국에게 반환되게 됩니다. 한편 그때 당시 중국에는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만으로 건너가 지금의 타이베이에 쑨원의 삼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한 중화민국 정부를 선언 및 수립하였습니다. 국민당 정부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미국으로부터 군사 및 경제 원조를 받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19601960년대 말 미국과 중국이 급격히 관계가 호전되면서 미국 닉슨 대통령 때는 미중 수교까지 맺어지면서 중국의 세력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1971년 10월, 중국의 세력이 컸던 UN 안전보장 이사회는 대만은 축출하면서 그 이후로 대만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대만의 경제
산업별 GDP 구성 비율로 보면 농업이 약 2%, 광공업은 20%, 서비스업은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자국 내 자원이 부족한 제약을 타개하기 위해, 대외무역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전자장비, 의류 등이 주요 수출품이며, IT 전자기기 분야의 첨단산업도 발달하였습니다. 특히 대만의 IT 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소기업을 바탕으로 한 OEM 수출을 통해 세계 ITIT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첨단 공업 분야의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TSMC, 종합 PC기업 ASUS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산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다음번 글에서는 국공내전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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